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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앵글] 21세기 율도국 … ‘아스가르디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바로가기 등록일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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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1
박성원
연구위원
미래연구센터

오는 9월 12일 ‘아스가르디아’라는 국가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지구상에 실질적인 영토가 없어 국가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함에도, 어찌 된 일인지 국민이 25만 명을 넘었다. 터키와 중국은 각각 3만7000여 명, 미국은 3만1000여 명, 한국도 1540여명이 시민으로 등록돼 있다. 이들 시민은 자신의 소망이나 사진을 담은 데이터를 작은 인공위성에 싣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우주국제연구소 이고르 아슈르베일리 소장이 추진하고 있는 아스가르디아는 평화로운 우주개발을 표방하면서 장차 달과 우주에 정거장을 건설해 사람들이 실제 우주 공간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4월 UN에 정식 국가로 등록을 요청하겠다고 하니 지구 최초의 우주국가가 탄생할 날이 머잖았다.
 
대안적 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또 있다. 최근 한국의 한 언론사 기자는 본인을 “사이버 국가 비트네이션 국민”이라고 밝히면서, 이곳은 자신의 이름과 e메일 주소만 기입하면 시민으로 받아줘 흔쾌히 그 국가의 국민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학력, 재산정도, 사회적 경험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받아주는 나라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2014년 스웨덴 해커 출신이 만든 비트네이션은 요즘 유행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 설계되었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기록을 한 곳에서 보관·관리하지 않고, 참여자의 컴퓨터마다 암호화돼 분산·저장하는 기술이다. 다중심 지배구조여서 어느 누가 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참여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어서 직접민주주의에 가깝다.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국가의 건설을 꿈꾸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실 가상국가는 최근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도 오래된 가상국가다. 국가라는 개념도 역사가 길지 않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근대 국가가 탄생했으니 이제 막 200년이 넘은 셈이다. 영토의 한계선을 긋고, 시민권을 도입하고, 정부를 수립하며, 지역내 도량형을 통일해 균일한 상거래가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는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사회적 발명이다.
 
그럼에도 요즘 국가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가상국가나 우주국가가 언론에 조명을 받고 시민이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살아야만 하는 곳’과 ‘살고 싶은 곳’이 다르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돈을 벌어야 하니 이 도시에 산다. 그러나 그 목적을 빼면 여기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주말이면 짜증나는 교통체증을 감내하고라도 산과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살고 싶은 곳과 살아야 하는 곳이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우리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실존과 희망의 불일치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상국가나 우주국가의 시민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려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가상 또는 증강현실 기술의 발달로 실제 경험하는 듯한 가상세계가 펼쳐지자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헬싱키시와 핀란드 전화회사인 엘리사가 ‘아리나라’는 가상도시를 만들어,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거나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즈음 영국의 BBC방송은 소니가 만든 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노라스의 1인당 GNP가 2224달러에 달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가상게임에서 사용하는 아이템 경매와 불법으로 거래되는 아이템 교환 가치를 추산한 결과 이 같은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 매킨지 출신의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국가의 종말』이란 저서에서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는 근대적 영토로부터 벗어나 도시를 기본단위로 한 지역국가로 발전할 것’이라며 ‘이 지역국가는 근대국가에서 이탈된 비트화된 도시’라고 주장한다. 비트화된 도시는 요즘 말로 디지털 가상국가다.
 
가상세계를 연구하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블루밍턴) 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의 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 교수는 즐거움(fun)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정치·경제적 질서를 만들고 경험하고자 만든 일종의 환상적 도피처가 가상세계이며, 이는 현실세계의 답답함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현실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고, 자기 능력의 증강도 경험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가상사회는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혁신적인 발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사실 현실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음에도 변화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사용이나 공장 가동 시간을 줄이기란 매우 어렵다. 도시는 모두 꽉 짜인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돼 있어 변화의 여지를 찾기 힘들다. 이러다 보니 변화를 상상하지 못하고, 상상한다고 해도 실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상상함으로써 변화의 동력이 생기는데 현실세계는 애초에 상상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사회는 꿈꾸지 못한 대안적 세계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도 가상국가를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나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만들어진 가상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컨대, 가상사회에도 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역사를 써야 한다. 가상현실을 다루는 게임에서도 세금을 걷지만, 그냥 성주에게 세금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 이 세금을 어떻게 써야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대안이 나온다면 이는 현실세계를 바꿀 수 있는 제언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인류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때마다 지적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했다. 지구상에 발견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신대륙은 거의 없지만 가상국가는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다. 우주로 상상력을 확장한다면 그 가능성은 증폭된다. 더 좋은 국가에 대해 늘 상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고 싶은 곳과 살아야 하는 곳의 불일치를 또 간신히 견뎌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