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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꿈꾸고 실패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사회 돼야
출처 중앙일보 바로가기 등록일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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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1
박성원
연구위원
글로벌혁신전략연구본부

박성원의 예측사회(3)  시작하지 못하는 세대를 위하여 
    
엔(N)포세대: 3포(연애·결혼·출산)와 5포(3포에 내 집과 인간관계 추가)를 넘어 꿈·희망 그리고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20~30대 청년세대. 네이버 오픈사전에 나와 있는 이 한 줄의 정의를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라는 단어였는데, 한 개인도 아니고 한 세대(generation)의 특징이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로 기술될 수 있는지 갑자기 그 단어가 낯설어졌다. 그래서 포기의 사전적 의미도 찾아봤다. '포기: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살다 보면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에게 부여된 기대는 많은데, 일을 끝낼 자신이 없을 때 딱 그만두고 싶었다. 물론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 빠른 포기가 권장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일반적으로 포기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나의 포기로 피해를 보거나 실망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포기가 반복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아 존중감도 낮아진다.   


이런 부정적 효과를 지금의 청년세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를 선택한다'고까지 말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세대 연구자들은 지금의 청년들이 실업, 낮은 임금, 불확실한 앞날 등으로 빈곤하고 불안한 삶을 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들은 무기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삶의 동기를 잃어간다. 청년들은 미래라는 단어를 격차·서열화·대립·삭막·소통부재·암울 등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년세대에게 미래사회는 오지 않았으면 좋을, 그런데도 그 미래를 스스로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시작하기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포기하는 것에 익숙하다.      


새로운 시작은 예측서 비롯

 

사실, ‘새로운 시작’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동물은 주어진 삶을 반복할 뿐이다. 인류는 새로운 시작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했다. 새로운 일의 시작은 예측에서 비롯된다. 예측하지 못하면 시작할 수 없다. 새로운 사업이든 연구든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이전의 경험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관련 이론을 찾아 가설을 세우고 대안을 설계한다. 이런 활동이 모두 예측이다. 만일, 당신이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는 예측부터 하지 않는 것이다. 예측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계가 너무 복잡해 예측한 대로 맞지도 않고, 또 미래를 계획해봐야 뜻대로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측은 인간의 조건이자 특권이었지만 점차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예측할 때, 더는 인간의 직관·감성·촉을 믿지 않는다. 통계와 데이터를 믿는다. 이게 더 정확하다고 평가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계의 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인류가 기계에 예측을 맡기는, 예측의 종속 현상은 심화할 것이다. 지금도 많은 경우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기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지능이 기계의 지능보다 뒤져 침팬지 수준으로 취급되면 인간의 예측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침팬지가 예측한다고 인간 세계가 달라지지 않듯, 인류가 예측한다고 고(高) 지능의 기계가 만들어갈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는, 지금 계획하는 일을 포기하기에 바쁜 청년세대가 예측 의존의 시대를 알려주는 징조는 아닐까.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대부분은 소수의 권력자와 다수의 기계가 설계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조건에서 바람 실현하는 게 미래 

 

시작하지 않는 세대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충남 홍동이라는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3600여명이 살고 있는 홍동에는 대안학교로 유명한 풀무학교가 있다. 국내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지역신문을 발간했다. 오리를 논밭에 풀어놓고 농사를 짓는 오리농법을 창안한 곳이다. 한마디로 새로 시작한 것이 많은 동네다. 이 동네에서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으로 유명한 촌로(村老)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미래연구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의 설명을 듣던 촌로는 “현재의 조건에서 현재의 바람을 실현하면 그게 미래 아니냐”고 되물었다. 연구자의 장황한 설명이 촌로의 지혜로운 한 줄로 요약되는 순간이었다.   
  
촌로의 말을 미래학적으로 도식화한 위의 그림을 보자. 개인 a는 현재의 조건에서 현재의 바람을 실현했으니 행운아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재의 바람을 이루려면 새로운 조건이 필요하거나(개인 b), 현재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개인 c). 또는 새로운 바람을 실현할 새로운 조건이 필요한 개인 d도 있다. 당신의 상황이 b라면, 지금의 현실적 조건으로는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수 없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바람을 막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피해야 한다. 신기술의 동향을 살피면서 자신의 꿈을 이뤄줄 기술적 변화를 살펴야 한다.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찾아 함께 실현의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다. 나보다 앞서 꿈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했는지 배우는 것도 좋다.  
  
당신의 상황이 c라면, 현재의 바람이 잘못된 경우다. 당신의 바람을 실현하다가는 현재 삶의 토대가 붕괴할 수 있다. 사회적인 예로 지금 세계가 당면한 기후변화 문제를 들 수 있다. 소비증가를 기반으로 한 성장주의는 우리 삶의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다. 이런 경우,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한다. 나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만나 이들이 공감하는 미래 방향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의 실현으로 현재 어떤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의 꿈, 기성세대와 다르더라도 경청해야 

 

d형은 좀 독특하다. 주위에서 엉뚱하다는 소리를 들었거나 몽상가로 간주될 수 있다. d의 꿈은 과거에 실현된 적이 없어 실현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면 혁신가로 대접을 받는다. 1960년대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선을 만든 미 항공우주국(NASA)이 그랬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인류는 처음으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아가는 미래를 실현할 수 있었다.  


청년 세대의 시작을 돕는다면 세 방향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들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그런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들의 꿈이 기성세대와 다르더라도 경청하고, 때로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내버려두는 선의의 무관심도 발휘하자. 이들의 꿈이 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하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실험실을 마련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도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spark@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