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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정책이 갖는 의미와 방향
출처 [KIST] TePRI REPORT 인터뷰 - 人sight 바로가기 등록일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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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1
조황희
원장

최근 원장 취임 이후 STEPI의 조직개편과 관련하여 과학기술계에서의 관심과 기대가 높습니다. 조직개편이 조직의 슬림화를 지향하고 계신데 그 철학이 있으신지요? 또한 취임사에서 신뢰성, 유용성, 선도성을 강조하고 계신데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먼저, STEPI의 전신이 KIST의 경제분석실이고 STEPI1세대가 KIST 동문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터뷰 요청을 받고 매우 기뻤습니다. 참고로 현재 세종시의 경제인문사회 B동에 있는 STEPI, 교통연구원 그리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과거 KIST의 경제분석실에 해당됩니다.

 

조직개편은 철학보다는 시의성입니다. 현재 정부에서 요구하는 정책적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작년 연말에 이를 끝냈습니다. 30년전 STEPI가 출발할 때 정책부서만 있는 매우 작은 조직이었는데 평가기능이 추가되면서 인력이 증가하다가 IMF 시기 평가기능이 KISTEP으로 이관되어 연구자가 30명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현재는 연구자 수가 100여명이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조직구조는 과거 방식의 횡적인 확장만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에 우리가 주제중심, 고객중심으로 변화시켜보자하여 체계를 3개로 전환하였습니다. 1) 국가연구개발 분석과 제도혁신을 추구하는 혁신시스템연구본부, 2) 신산업전략과 혁신기업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는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 그리고 3) 과학기술 ODA와 국제사회 과학기술협력을 위한 글로벌혁신전략본부입니다. 이들 세 연구본부는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연구의 30년을 열어갈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과거 STEPI가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혁신산업 발전을 위해 선도적인 정책연구를 수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차 국가사회적 문제가 복잡해지고 정책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STEPI 정책연구의 효과가 다소 약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STEPI 정책연구의 쓰임새를 다시 높이고자 신뢰성, 선도성, 유용성을 3대 경영가치로 설정했습니다. 국민과 정부로부터 신뢰받는 정책지식을 생산하고, 국가적 현안과 중장기적 문제를 선도적으로 연구하며, 궁극적으로는 STEPI가 우리 사회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STEPI의 새로운 30년을 여는 기본 철학으로 설정했습니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혁신주도 성장’, ‘사람중심 과학기술’, ‘4차 산업혁명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대표 연구기관인 STEPI에서는 이를 어떻게 지원하실 계획인지 듣고 싶습니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과학기술의 기초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정책에 대해 STEPI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첫째는 STEPI가 지난 30년간 수행해 온 정책연구의 수월성과 활용성을 강화함으로써, 과학기술정책의 기획과 실행에 필요한 정책지식의 질을 높이겠습니다. 두 번째는 과학기술 주요 조직과의 협력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현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등 과학기술 의사결정 기구를 강화했습니다. STEPI는 주요 과학기술 의사결정기구와 정책협의체를 가동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과학기술계 연구기관, 단체, 유관기관과의 협력 채널을 넓혀 과학기술정책 이슈와 대안을 신속하게 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적 수준의 R&D투자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R&D 못지않게 과학기술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지금 우리에게 과학기술정책이 갖는 의미와 방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선진국가의 초입에 와 있습니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가의 면모에 부합하며 경쟁력을 지속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R&D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도상국가 시대의 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선진국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연구자 중심 제도 개선이나 PBS 개혁 이슈가 나오는 게 이러한 맥락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새로운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과학기술의 탁월성과 자신감을 확보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과거와 같은 정부의존 체계에서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권위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선진국으로의 정착, 지속적 경쟁력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를 놓고 볼 때, 우리의 과학기술에서는 수월성과 인재중심, 문제해결과 미션중심, 개방과 국제화,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행정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째, 적당히 나누는 연구개발이 아닌, 최고를 지향하는 연구개발 전략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학술적인 연구와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연구개발의 트랙을 분리해야 합니다. 지금은 양자가 혼재되어 과학기술의 성과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후자의 경우 문제해결, 미션해결을 성과목표로 설정하고 연구자들이 솔루션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셋째, 국내에서 내부적경쟁에 몰두하는 연구개발이 아닌, 개방된 국제환경 속에서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이 건강한 실력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합니다. 넷째, 연구개발 관리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STEPI가 기존의 국가혁신체계 연구를 넘어, 대학, 출연()등 실제 연구를 수행중인 기관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좀 더 구체적인 혁신 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STEPI와 출연()은 앞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나가야 할지 원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STEPI가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한지 4년차에 접어듭니다. 서울에 있을 때에 비한다면 대덕연구단지와의 교류가 크게 늘고 있고, 또한 세종으로 이전한 다른 경제인문사회연구소들과의 교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이러한 지리적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대전과 세종을 잇는 국책의 허브로서 STEPI의 역할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현재 경제인문사회 연구소에는 선제적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이 많지만 기술과 분리되어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대덕연구단지의 출연연구소들에서는 기술개발은 하지만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STEPI가 이의 가교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대덕연구단지의 출연연구소들과 함께 과학기술정책을 토론하고 학습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눌 협력채널을 만들겠습니다. 경제인문사회연구소들이 고민하는 국가적 과제들이 과학기술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함께 탐색하는 정책브리지를 만들겠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지난 2009년 나로호 발사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지원하시던 분들 중의 한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단 나로호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기초기술에 기반한 국가적 대형·혁신 프로젝트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1987년 당시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연구자로서 첫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STEPI가 설립되어 자리를 옮긴 뒤에도 우주 정책 연구를 지속해 오면서,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주요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저는 나로호가 목적일뿐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재 한참 연구개발 중인 KSLV-2 프로젝트나 달탐사 프로젝트는 여전히 계획의 변경 가능성과 풀어야 할 기술적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왜 막대한 돈을 들여서 우주개발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고, 실패를 거듭해도 우주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우주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대형 R&D사업은 미래를 대비한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나로호 같은 국가적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연구자들의 부담이 매우 큽니다. 물론 우주개발 후발주자인 우리가 우주 선진국들의 경로를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 목표가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실패를 혁신적 실험의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실패를 하나의 과정적 성과로 인정하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혁신이 유발되지만, 실패를 낭비로 보면 소극적이고 선진국 기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남에게 의존할 수 없는 우주기술 같은 핵심기술이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우리만의 원천기초기술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R&D 성과를 평가하고 실패를 과정적 성과로 축적할 수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기술정책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외국의 정책을 수입하여 새로운 R&D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고,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정책 기획, 과제 평가, 연구소 경영을 위한 운영철학 등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원장님께서는 과학기술 ODA와 관련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5030 클럽국가에 가입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커졌습니다. 이에 걸맞게 한국의 ODA를 한층 더 개선하기 위한 복안이 있으신지요?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유일의 국가입니다. 2011OECD DAC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 또한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ODA 예산은 20064,500억원 수준에서 2017현재 2.6조원으로 GNI 대비 0.05%에서 0.15%로 세 배 증가하였습니다. 비록 OECD 평균(0.3%)과 비교할 때는 여전히 미흡하다 하겠지만 증가율 면에서는 매우 괄목할 만한 발전이라하겠습니다. 그러나 양적 증가와 함께 향후 풀어갈 숙제도 많아졌습니다. 유무상 원조분절화와 무상원조 기관 간 협업의 미흡, ODA 사업 기획·관리·평가 과정의 비효율성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ODA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ODA 조사·분석·평가 전담조직의 설치 및 운영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경우 총예산이 약 1조원이 넘어가면서 이의 효율적 기획·관리·평가의 필요성이 증가하였고, 그 대응을 위해 90년대 초반 STEPI 내에 전담부서를 설치하였습니다. 이는 훗날 KISTEP으로 기능이 이관되었고 오늘날에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평가 기능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ODA 사업의 총 규모는 2017년 현재 2.9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관리·평가 전담조직의 도입시기 예산(1조원 규모)을 고려해 본다면 ODA 사업의 경우 전담조직 설치 및 운영이 필요한 시기는 이미 도래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부처간 경쟁체제일뿐 체계적인 기획·관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또한 데이터가 쌓여서 역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점이 취약하여 총괄 관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전담조직은 ODA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ODA 사업에 대한 조사·분석·평가 기능 등을 수행함으로써 정부의 증거기반 정책기획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평소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대망(大望)”이라는 책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리더들의 특성도 다르고,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 있고, 작은 조직이 큰 조직을 이기는 과정, 기술의 발전상 그리고 근대 일본의 발전과정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경영분야에서 말씀드리면 농부의 마음으로 경영하라는 책으로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의 관점에서 경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 이 책의 핵심은 소출을 늘리기 위해 농약 등을 사용하는 단기적인 인위적 조치보다 유기농업의 관점에서 식물의 자연스러운 생육조건 중시가 장기적으로 토양과 소출을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연구관리의 철학적측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측면에서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현 정부의 사람중심정책기조와도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다른 하나는 1997년에 출간된 이상한 회사라는 책이었습니다. 일본의 합판 가공 기계를 만드는 회사의 이야기인데, 사시(社是)F=ma로 독특하였습니다. 유연한 조직운영 체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경의 인재를 끌어당기는 회사로 과거 수 십년간 적자를 내지 않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조직역량 측면에서 참고가 될 만한 책입니다. 삼성에서도 당시 이 회사를 방문하여 회사경영 방식을 조사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2013년에는 사시가 F=ma인 이상한 회사 메이난제작소이야기란 제목으로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인문분야에서는 C.P. Snow두 문화: 과학과 인문학의 조화로운 만남을 위하여라는 책입니다. Snow는 과학과 인문학간의 단절, 분극화 현상이 사회발전에 치명적 요인이 된다고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의제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KIST를 포함한 출연() 및 과학기술 연구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역량 면에서 국내외의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기관도 국제연구계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어야 훌륭한 기관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봅니다. 국제적 평판이 높은 분이 많아져야 우리나라의 R&D Society가 건강해지는데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그쪽이 좀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으로 개인보다는 팀 단위의 성과가 자주 거론되기 때문에 이런 분들이 많아져야 R&D Society를 리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국내외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는 연구업적과 국제 학회에서의 기조강연 등을 많이 하시는 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